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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소소한 일상

3월 10일의 외출. 워낭소리, 상도동 철거민, 회칼 테러의 추억, 북촌마을

화창한 봄날, 엉덩이가 들썩거려 영화를 보러 나섰다.

10시 30분 조조 영화를!!!

빈 자리가 많아서 지정석이 아니어도 골라 앉을 수 있고,

떠드는 애들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오징어 냄새도 없어서

영화 감상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

 

버스가 늦게 도착해 어두워진 극장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화면에는 이미 소를 끌고 걷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대략 한시간 20분 정도?

상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슬그머니 휴지를 꺼내 눈물을 찍어냈다.

휴지 꺼내는 소리조차 너무나 크게 들렸다.

소와 한몸이 된 듯 살아가는 할아버지.

남들 다 치는 농약 한 번 안 치고 손수 논의 잡초를 뽑으신다.

논바닥에는 우렁이 기어다닌다.

남들 다 먹인다는 사료도 마다하고 꼴을 베어다 소를 먹이신다.

사료로 사육되는 소들에 비하면 이 소는 행복한 거지 싶다.

기계농사 마다하고 낫으로 벼를 베신다.

기계가 지나간 자리에는 낟알이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평생의 서운함도 들어 있겠지만, 그런 할아버지를 보는 안타까움에 할머니는 끝없이 투덜대신다.

다리도 성치 않은 양반이 무릎을 끌며 농사 짓는 모습에 할머니는 평생 얼마나 가슴 저려오셨을까.

 

그 모든 것들이 워낭소리 하나에 녹아든다.

소가 움직일 때면 흔들려 맑은 소리를 내는 워낭.

그 청량한 소리에 순수한 농군과 아낙과 우직한 황소의 마음이 모두 녹아 있는 것 같다.

 

 워낭소리 포토 보기

 

 

극장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지나다 보니 금호아시아나 본관 앞에서 홍보전이 열리고 있었다.

용산 철거민들이 억울하게 학살당한 지 벌써 40일.

제2의 참사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가운데,

어쩌면 이들이 그 주역이 될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생각이 든다.

 

평일 낮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바로 옆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넥타이 부대를 비롯해 사람들이 오륙십 명이나 있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지만..

단 한 사람도 멈추어서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관심을 갖고 쳐다보지 않는다.

마치 남의 나라, 딴 세상의 일이라는 듯.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자기에게는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듯.

 

 

 

 

 

 

 

내친김에 산책에 나섰다.

북촌마을을 향해 걸어가는 길.

조계사 앞을 지난다.

나무에 붉은 순이 돋아나려는 참이다.

 

지난 여름 회칼 테러가 일어났던 우정국 공원.

그 끔찍했던 기억은 모두 묻어버린 듯 (무관심한 사람들처럼)

계단에 얼룩졌던 핏자국도 모두 사라지고

공원은 평화롭게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살인 폭력배는 풀어주고 무고한 시민들은 잡아들이는 이 나라가 서럽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내려왔던 길로 올라갔다.

현대사옥 옆길.

점심 때라 그런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골목을 어찌어찌 빠져나간다.

목이 말라 음료수를 사러 들렀던 가게 옆에 꽃피는학교 간판이 붙어 있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대안학교인 모양이다.

음...좀 더 알아봐야겠다.

 

 드디어 한산한 한옥마을 언저리에 닿았다.

좁은 골목 안쪽에 갤러리가 하나 보인다.

온통 휴대전화를 붙여 놓았는데...ㅡㅡ;;

주인장이 외출중인지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지 못했다.

이달 말까지 무슨 전시회를 하는 모양이다.

 

 

중앙고 앞에 양쪽으로 뻗은 언덕길.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딸랑딸랑 소리가 난다.

아까 들은 워낭소리 같기도 한 맑은 소리.

뒤돌아 보니 소리 날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집 처마 밑에 달린 풍경 하나를 발견하고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골목에 아무렇게나 기대어 놓여 있던 솟대와 새 조각

 

그림자 놀이 

 

한상수 자수박물관. 지난번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모처럼이니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입장료 삼천원을 내고 들어가니, 신을 벗고 한옥 방으로 들어가란다.

ㄱ자 모양 방 네 칸 정도가 전부이다.

거기에 우리 전통 자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참 곱다. 가정 가사 시간에 자수 놓기 하면 참 잘했었는데. ㅎㅎㅎ

부분부분 솜을 두어 입체감을 살린 호랑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역동적 느낌!!

안에서는 촬영 금지라 밖에 나와 마당 풍경을 찍었다. 

 봉황 머리 빗물통.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으나 붉은 꽃봉오리가 곧 터질 듯 부풀어 있다.

 각박한 도시 생활에 여유 한자락 던져 주는 호미.

 언덕을 내려와 도로변에 서니 안내도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길을 건너, 역시 전에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겨울에 철을 잊고 자라 있던 애기똥풀이 바싹 말라 있다.

 

한옥이 빽빽이 늘어선 골목을 바라보다가 문득 든 의문.

왜 이렇게 빽빽이 붙어 있을까?

낙안읍성과 너무나 비교된다.

옛날에 이렇게 집을 다닥다닥 붙여 짓고 살았을까?

으음..... 

 

카페처럼 생긴 건물 발견!

 

계단 벽에 그려놓은 고양이가 귀엽다.

 

갤러리, 전시 준비중이라고 쓰여 있어 창밖을 기웃거리다가 돌아섰다.

박스 면을 잘라서 만든 고양이 모습.

 

내려오는 길. 여기저기서 공사 중이다.

전통 방식 들보.

그러나 곳곳에 진행 중인 공사들이 전통과는 무관하게, 도시적 색채를 띠고 있다. ㅡ,ㅡ

 

이번에는 정말로 찻집. 차 마시는 뜰.

 

 

有美라는 간판이 붙은, 뭐 하는 데인지는 도통 알 수 없는 곳 진열창.

물레를 축소해 놓은 건가 보다.

 

 

 

 

 

 

 

발길을 잡아 끄는 이정표. 공정무역 가게라니 구경이라도 해야지.

 

찾아간 곳은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이쁜 가게.

그런데 의류브랜드였다. 

사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라 그야말로 구경만 ㅠㅠ

 

 

시간 여행을 끝내고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는 길.

한지로 만든 전등갓이 곱다.